Passio Secundum Johannem, BWV 245 — 요한 수난곡, 연주사와 연주관습
The Passion of Christ
The Passion of Christ
멜 깁슨이 감독한 The Passion of Christ(2004)는 마틴 스코시지 감독의 The Last Temptation of Christ(1988) 이후 아마도 가장 논쟁적인 종교 영화일 것이다. 나사렛 예수의 마지막 12시간을 극사실적으로 다룬 이 영화는 노골적인 반 유대 정서와 잔혹한 영상 때문에 개봉당시 “종교를 빙자한 새디즘 영화”라는 엄청난 비난을 감수해야만 했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요한 수난곡 역시 비슷한 논쟁의 중심에 있다. 마태 수난곡과 비교해 보면 요한 수난곡의 특징이 분명하게 드러나는데 마태 수난곡에서 ‘유대’라는 말은 오로지 ‘유대인의 왕 예수’에서만 발견되는데 반해 요한 수난곡은 예수 박해의 선봉에 유대인이 있음을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피칸더(Picander)가 가사를 쓴 마태 수난곡과 달리 요한 수난곡의 가사는 바흐가 직접 성서와 여러 작가의 종교시로부터 구성한 것인데 그가 애시당초 반유대적 성격을 지닌 요한복음 텍스트에 단지 충실했을 뿐인지 아니면 루터파 신앙 때문인지 그것도 아니면 정서적으로 반유대주의자였는지 분명치 않다. 다만 자신의 영화가 성서에 충실했을 뿐이라고 항변한 멜 깁슨과 달리 바흐는 변명할 시간이 없었으므로 요한 수난곡은 후대에 많은 오해를 낳게 되었고 작품에 대한 올바른 평가를 방해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요한복음에서 유태인에게 전가된 예수 수난과 죽음의 책임을 좀 더 보편적인 그리스도교인 전체의 책임으로 다루려고 바흐가 세심하게 가사와 음악을 구성했다는 주장도 있다.
또한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형까지를 다루고 있는 요한 수난곡의 플롯은 마태 수난곡에 비해 짧은 시간 동안의 극적인 사건에 집중하고 있다. 따라서 곡 전반에 걸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더불어 바흐는 전례 없이 힘이 넘치는 군중합창(turba)을 썼으며 그 표현 방법도 상징적인 수사법에 그치지 않고 고통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직접적인 표현에 거리낌이 없었다.
바흐에게 영향을 준 헨델의 요한 수난곡과 브로케스 수난곡 그리고 전임 칸토르 쿠나우의 작품 어디에도 이와 같은 강렬함을 찾기는 어렵다. 당시 라이프치히 시 당국자들이 신참 칸토르의 당돌한 음악에 당황한 것도 무리가 아니다. 오늘날 멜 깁슨의 영화를 보면서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고명하신 시의 고위 관리와 성직자들은 오페라를 연상시키는 수난곡에 불쾌감을 감추지 못했다.
오랫동안 요한 수난곡은 마태 수난곡의 그늘에 숨어 있었으며 심지어 열등한 작품으로 인식되었다. 단지 아름다운 아리아의 수가 마태 수난곡에 비해 적다는 이유로 인기가 없다면 바흐에게는 꽤나 억울한 일이다. 바흐는 요한 수난곡을 자주 연주했으며 생의 마지막까지 작품을 다듬는데 열중했다. 요한 수난곡은 아마도 바흐가 지휘하여 실제로 연주된 최후의 대곡일 것이다. 대부분의 바흐 작품이 완결되고 정서된 형태로 전해진 것과는 대조적으로 요한 수난곡은 적어도 서너 가지 연주버전이 존재한다. 이런 예는 헨델이라면 아주 흔한 일이지만 바흐 작품에서는 아주 예외적이다.
바흐의 다른 작품도 마찬가지이지만 요한 수난곡은 어느 한 곳도 흥미를 불러일으키지 않는 부분이 없다. 작품 구석구석 신학, 수사학, 연주관습의 전 방위로 다양한 논쟁거리가 가득하다. 이를테면 비올라 다모레처럼 너무나 당연해 보이는 악기 지시조차도 바흐 당시 라이프치히에서는 공명현이 없는 간소화된 비올라 다모레가 쓰였다는 주장에 의해 논쟁의 도마에 올려지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흥미로운 작품이라도 막상 요한 수난곡을 제대로 들어보거나 연주에 참여하려고 할 때 도움이 될 만한 자료를 찾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지금까지 악보나 일반적인 작품 해설을 제외하고 수난곡의 연주사와 연주 실제에 대한 글을 살펴보면 불충분하거나(테리 노엘 토위, 1991) 너무 간략하게 다루었거나(마르틴 엘스테, 2000), 일부 악장에 한정된 구체적인 연주관습만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도로티야 파비안, 2003) 큰 도움이 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이 글은 거의 모든 주요 연주를 망라한 연주사와 더불어 판본의 문제, 연주 관습의 문제를 다루어 작품 감상과 이해에 대한 실질적인 가이드가 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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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Archaeology
바흐가 영원한 잠에 빠지자 그의 창조물들 역시 잠시 세상에서 몸을 감추게 된다. 요한 수난곡은 그 악보를 물려받은 칼 필립 엠마누엘 바흐에 의해 부분적으로 재활용(1769년 마태 수난곡, 1772년 파스티쵸 수난곡)되었고 몇몇 악장은 여러 경로를 통해 고전파 음악가들에게도 알려져 있었지만(가장 유명한 예는 베토벤이 첼로 소나타 op.69에서 아리아 “Es ist vollbracht”를 인용한 것이다) 현대적인 의미에서 재발견은 역시 마태 수난곡과 마찬가지로 19세기 베를린 징-아카데미(Sing-Akademie)에서 시작되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첼터(Carl Friedrich Zelter)의 제자인 칼 프리드리히 룬겐하겐(Carl Friedrich Rungenhagen)은 1833년 마태 수난곡에서 멘델스존과 같은 역할을 했다. 그리고 1863년에는 빌헬름 루스트(Wilhelm Rust)가 편집한 구 바흐 전집(Bach Gesellschaft. BG) 악보가 출판되었다.
비교적 녹음의 역사가 오래된 b단조 미사나 마태 수난곡에 비해 요한 수난곡은 전곡이든 부분 발췌든 78회전 레코딩이 많지 않다. 그나마 놀라운 점은 처음 연주된 아리아들이 오늘날 일반화된 1724년이나 1749년의 판본이 아닌 1725년에 새로 추가된 아리아들이었다는 점이다.
오랫동안 최초의 전곡 연주는 빈의 합창지휘자 페르디난트 그로스만(Ferdinand Grossmann)의 녹음이라고 믿어졌다. 그러나 최근 겝하르트(Gebhardt) 레이블이 놀라운 음반 하나를 복각했다. 1938년 11월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에리히 클라이버(Erich Kleiber)가 콜론 극장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을 이끌고 요한 수난곡을 녹음한 것이다. 역사적인 의의에도 불구하고 열악한 녹음과 복각상태 그리고 만족스럽지 않은 독창 기량 때문에 이 음반은 화려했던 남미 제국에 대한 추억 이상은 되지 못하는 것 같다.
페르디난트 그로스만과 아카데미 실내합창단, 빈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1950년 연주(VOX)는 독일어권에서 본격적인 연주의 신호탄이 된다. 첫 번째 합창 등에서 일부 축약이 있다. 복음사가 페리 그루버의 감미로운 목소리는 성서 낭독자라기보다는 베르디 오페라에 어울릴법하며 거대한 군중합창은 바그너 오페라를 연상시킨다. 그리고 코랄의 리타르단도는 분명히 낭만주의 시대의 잔재이다. 발터 베리가 이 음반을 통해 오랜 예수 역을 시작한 것이 한 가지 기억해 둘만한 점이다.
50년대 레코딩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단연 귄터 라민(Günther Ramin)과 라이프치히 성 토마스 교회 합창단,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1954년 연주(Berlin Classics)일 것이다. 유서깊은 성 토마스 교회에서 녹음된 이 연주에서 전설적인 복음사가 에른스트 헤플리거가 요한 수난곡 음반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소프라노 아그네스 기벨, 알토 마르가 회프겐 등 쟁쟁한 솔리스트가 참여했다. 라민은 멘델스존 이후 19세기 낭만주의 전통에서 역사적인 접근법 사이의 중요한 가교 역할을 했는데 대규모의 합창과 오케스트라는 시대의 표준을 벗어나지 않았으나 독창진의 수준은 시대를 훌쩍 뛰어넘었다. 해플리거는 18세기 수사법보다는 낭만적인 정열로 바흐의 텍스트를 읽어 내려가는데 “바라바는 강도였다”가 특히 마음을 뒤흔드는 부분이다. 마르가 회프겐은 텍스트에 깊이 동화된 감동적인 가창을 들려준다. 비올라 다 모레, 류트, 비올라 다 감바 등 지시된 악기가 모두 사용되었는데 녹음 연도를 고려하더라도 만족할만한 기술로 연주되었다. 아직까지는 하프시코드는 속세의 것, 오르간은 성스러운 것이라는 낭만주의적 2분법이 남아있다.
이외에 1950년대에 쿠르트 토마스(Kurt Thomas), 칼 리스텐파르트(Karl Ristenpart) 등이 연주를 남기고 있으나 1960년대까지는 중요한 녹음이라고 할 만한 것을 찾기 힘들다. 제 2차 대전의 후유증이 아마도 반 유대주의적인 것처럼 보이는 요한 수난곡의 연주를 꺼리게 된 하나의 원인일 것이다.
1950년대의 중요한 사건은 1951년 아서 멘델(Arthur Mendel)에 의해 신 바흐 전집 악보(Neue Bach Ausgabe, NBA)가 출판된 것이다. 구 바흐 전집 악보에 비해 원전의 역사적인 근거가 확보되었고 멘델 자신이 뛰어난 지휘자였기 때문에 연주 실제적인 측면에서도 오류가 적었다. 더불어 멘델은 연주에 적당한 악기 편성을 제안하기도 했다. 1974년 멘델은 비평적 주석을 붙여 개정판을 내놓았는데 여기 포함된 1725년, 1730년대, 1749년의 변경된 악장은 나중에 다양한 판본을 시도하는 기초 자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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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The Age of Legendary Masters
요한 수난곡 연주사에서 1960년 이후 약 20년간이 매우 중요하다. 이 시기에는 소위 바흐 연주의 거장들이 등장하여 명연들을 쏟아냈다. 또한 역사적인 접근 방식과 역사적 연주방식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 시기이기도 하다. 전통적인 거장의 시대는 프리츠 베르너(Fritz Werner)에서 시작하여 칼 리히터(Karl Richter)에서 정점을 이루었으며 한스-요아힘 로취(Hans-Joachim Rotzsch)로 막을 내렸다.
2차 대전 직후 프리츠 베르너는 하일브론 하인리히 쉬츠 합창단과 포르차임 실내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에라토(Erato) 레이블을 위해 일련의 칸타타와 수난곡, 미사 등 바흐의 주요한 종교 작품을 녹음했다. 1960년 녹음된 요한 수난곡에서 복음사가는 에른스트 해플리거와 더불어 이제 전설이 된 테너 헬무트 크렙스가 불렀다. 베르너는 바흐 성악곡에서 역사적인 접근법을 고민한 초기의 인물이며(알프레트 뒤어와 아우구스트 벤칭거가 그의 협력자였다) 악기 구성도 최대한 역사적인 실제에 맞게 했다. 마리-클래르 알랭이 하프시코드와 오르간을 연주했다. 템포는 동시대의 기준으로도 상당히 느린 편인데 독일 낭만주의-네오 바로크의 직설법이 아닌 완곡한 표현을 지닌 연주이다. 프랑스 출신이 많은 기악 앙상블이 유연한 연주에 한 몫 했다고도 할 수 있다. 헬무트 크렙스는 음악과 텍스트 양쪽의 의미를 깊이 있고 뚜렷한 음성으로 부른 드문 복음사가이며 마르가 회프겐은 라민에 이어 다시 한 번 최상의 알토를 들려준다. 베르너의 바흐 연주는 오랫동안 구할 수 없는 연주 가운데 하나였는데 만약 일찍 복각되었더라면 리히터의 바흐 연주에 비견할 만한 연주로 더 널리 알려질 수 있었을 것이다.
칼 포스터(Karl Forster)는 오늘날 잊혀진 바흐 해석자 가운데 한 명이다. 1961년 베를린 성 헤드비히 교회 합창단과 베를린 심포니를 이끌고 녹음한 요한 수난곡(EMI)에서 복음사가로 프리츠 분덜리히가 활약했고 젊은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가 예수를 불렀다. 낡고 무거운 해석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연주가 빛나는 까닭은 두 가수 때문이다.
볼프강 괴넨바인(Wolfgang Gönnenwein) 역시 오늘날 잊혀져버린 1960년대의 주요 바흐 해석자 가운데 한 명이다. 초기 수난곡과 칸타타 연주에 엄청난 기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60년대를 마지막으로 바흐 경력이 끝나버린 것이 아쉽다. 무겁고 낭만적인 포스터의 해석과 달리 괴넨바인과 콘소르티움 무지쿰의 요한 수난곡(EMI, 1969)은 산뜻하고 균형 잡힌 음향을 추구했다. 쿠르트 에크빌루즈, 지크문트 님스게른 등 옛 성악에 관심을 가진 성악가들이 참여함으로서 역사적인 연주방식의 영향을 보여준다. 평이한 해석 가운데 소프라노 엘리 아멜링이 천사의 목소리라는 상투적인 표현이 아깝지 않은 가창을 들려준다.
1964년 드디어 칼 리히터의 전설적인 연주가 등장한다. 오늘날 가장 잘 알려진 60년대 연주로서 오랫동안 요한 수난곡 디스코그라피의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으며 여전히 가치 있는 연주이기도 하다. 당시는 물론 요즘 관점으로도 아주 예리하고 격렬한 연주지만 그렇다고 해서 감정의 강물에서 허우적거리는 괴물은 아니다. 리히터에게 바흐의 정열이란 언제나 열정적인 신앙의 표현이지 속세의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20세기 토마스 칸토르들은 전통과 현대성을 조화시키기 위해 노력했는데 그 누구보다도 성공한 사람이 슈트라우베와 라민의 제자이면서도 아이러니 하게도 칸토르가 되지 않은 리히터이다. 이 연주에서 다시 한 번 해플리거가 감동적인 복음사가를 불렀으며 젊은 헤르만 프라이가 청년다운 예수 목소리를 들려준다. 해플리거의 가창은 지휘자가 누구든 말씀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구 바흐 전집으로 연주한 첫 번째 녹음에서는 바소 콘티누오로 오르간만을 사용했는데 나중에는 마태 수난곡과 마찬가지로 하프시코드와 오르간을 모두 사용했다. 이후 몇 년 동안 리히터는 바흐 레퍼토리를 가지고 세계 순회공연에 나서는데 1968년 모스크바 음악원 홀에서 실황 연주한 요한 수난곡이 멜로디아 음원으로 발매된 바 있다.
1970년대에는 독일과 네덜란드 이외의 국가에서도 좋은 요한 수난곡 녹음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죄르지 레헬(György Lehel)과 헝가리인들의 노래(1971, Hungaroton)는 독일어권 밖에서 독일어로 녹음한 최초의 성공적인 레코딩이다. 프란츠 리스트 음악원 실내 합창단과 오케스트라가 연주했다. 독일어권의 연주에서는 드문 색채감이 풍부한 합창에 독창진의 개성과 기량도 출중하다. 요제프 레티가 복음사가를 죄르지 멜리스가 예수를 불렀으며 알토 율리아 하마리가 리히터의 영상물(1970)에 이어 견고한 목소리를 뽐낸다.
벤저민 브리튼(Benjamin Britten)과 잉글리시 체임버 오케스트라, 원즈워쓰 소년 합창단의 연주(1971, Decca)는 데이비드 윌콕스 경(Sir David Wilcocks)의 연주에 이은 영어판 요한 수난곡으로 가사는 윌콕스 반에서도 복음사가를 부른 피터 피어스와 이모겐 홀트의 영역 가사를 사용했다. 복음사가 자신의 번역인 만큼 의미는 물론 가사의 전달에도 신경 썼기 때문에 성서 텍스트는 들을 만하지만 자유시로 된 합창이나 아리아에서는 영어 가사의 한계가 분명하다. 브리튼은 작곡가다운 직관으로 수난곡을 종교적인 드라마로 해석했는데 그 영향은 나중의 가디너 연주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한스-요아힘 로취는 스스로 능력 있는 테너가수였을 뿐만 아니라 낭만주의 전통을 간직한 최후의 칸토르였다. 성 토마스 교회 합창단과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녹음한 요한 수난곡(1975–76, RCA)은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막을 내리는 전통 시대의 마지막 녹음으로 의미가 있다. 흥미롭게도 성 토마스 교회가 아닌 드레스덴의 루카스 교회에서 녹음되었다. 복음사가는 리히터의 영상물 이후 본격적으로 레코딩에 등장한 페터 슈라이어이며 그 목소리는 이제 막 전성기에 도달하고 있다. 이 음반에는 몇 대의 칸토르를 거쳐 최상의 상태로 도달한 정교한 소년합창의 묘미가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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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March of Historically Informed Performance
20세기 초반부터 요한 수난곡의 이국적인 악기 편성은 언제나 지휘자의 흥미를 불러 일으켰기 때문에 밸런스야 어찌 되었던 바흐의 악기 편성이 존중되고 있었다. 사실 과거의 지휘자들이 정격연주랍시고 문자 그대로의 지시, 문자 그대로의 악보에 집착하는 것도 극단적인 낭만주의 경향만큼이나 문제였다. 이를테면 거대한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비올라 다 감바와 류트를 연주하는 것이 예전에는 꽤 흔한 일이었다. 미국의 건반악기 주자이자 음악학자였던 푸트넘 올드리치(Putnam Aldrich)는 1940년대 피에르 몽퇴(Pierre Monteux)의 지휘로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을 연주한 경험을 회고하면서 하프시코드 주자로서는 당연한 임무인 즉흥 화음 연주를 하고 있었는데 몽퇴는 지휘를 멈추고 버럭 화를 내면서 바흐가 화음이 필요했으면 써 놓았을 것이라고 우긴 적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과거 지휘자들이 갖고 있었던 옛 음악과 역사적 연주방식에 대한 지식은 요즘 학생들보다도 별로 나을 것이 없다. 때문에 옛날 연주 중에서 분명 감탄할 만한 것이 많지만 또한 비평적인 시각에서 바라봐야만 한다.
역사적인 연주방식은 단순한 악기 선택의 문제 이상이다. 성악과 기악의 밸런스는 어느 정도로 할 것인가, 어떤 편성으로 연주할 것인가, 콘체르티스트-리피에니스트 해석인가 아니면 일반적인 합창인가, 레치타티보를 어떻게 반주할 것인가, 세부적인 아티큘레이션은 어떻게 실제화할 것인가 끊임없는 고민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바소 콘티누오 구성만 해도 오르간 혹은 하프시코드만으로 반주할 것인지 하프시코드와 오르간을 항상 듀얼로 연주할 것인지 아니면 레치타티보, 아리아, 합창, 코랄에서 역할을 분담할 것인지 선택을 해야 한다. 바흐가 지시한 콘트라바순(Bassono Grosso)이 과연 어떤 악기인지, 연주에 실제로 사용할 것인지 누구도 정답을 제시하지는 못한다. 류트를 베이스 아리오소에만 사용하는 것은 분명한 낭비이므로 몇몇 아리아 혹은 전곡에 걸쳐 류트 바소 콘티누오를 적극적 사용하는 것을 시도할 수 있다.
물론 어떤 해석에도 정답은 없다. 하지만 정답이 없다는 것이 아무렇게나 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모든 해석에는 충분한 근거와 정당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를테면 바소 콘티누오 분야라면 이미 고전이 된 로렌스 드레이퍼스(Laurence Dreyfus)의 Bach’s Continuo Group(1987, Harvard) 같은 책이 좋은 참고자료가 된다. 드레이퍼스의 책은 하프시코드와 오르간의 듀얼 콘티누오, 짧은 레치타티보 반주 원리, 바소 콘티누오 악기 구성의 문제에 대한 실질적인 조언을 해주기 때문에 바흐 성악곡을 연주하고 이해하려는 사람이라면 일용할 양식처럼 봐둘만한 책이다.
마르틴 엘스테(Martin Elste)는 바흐 연주사를 정리하면서 요한 수난곡의 해석을 길레스베르거(Hans Gillesberger)/아르농쿠르(Nikolaus Harnoncourt) 이전과 이후로 나누었을 정도로 요한수난곡 연주사에서 길레스베르거/아르농쿠르가 지휘한 빈 소년 합창단과 콘첸투스 무지쿠스 빈의 연주(1965, Teldec)는 중요한 분기점이다. 이 연주를 누가 지휘했는가 한동안 논란이 된 바 있다. 현재 구할 수 있는 음반을 보면 아르농쿠르가 지휘자로 되어 있고 또 오랫동안 아르농쿠르가 지휘자라고 여겨졌으나 사실 초판의 편성표를 보면 아르농쿠르는 기악 앙상블에만 포함되어 있으며 더 굵고 큰 글자로 “지휘: 한스 길레스베르거”라고 표기되어 있다. 물론 전체적인 해석에 고집 센 아르농쿠르가 꽤 영향을 주었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 할 수 있다. 그러나 아르농쿠르의 음반들이 상업적으로 성공하게 되면서 나중에 음반사가 지휘자를 마음대로 바꾼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길레스베르거와 아르농쿠르의 연주는 시대악기와 역사적 연주방식을 광범위하게 사용한 최초의 수난곡 연주이다. 아르농쿠르 자신이 비올라 다 감바와 첼로를 연주했고 구스타프 레온하르트가 레치타티보와 아리아의 오르간 반주, 헤르베르트 타헤치가 합창과 코랄의 오르간 반주를 맡았다. 악보의 해석, 악기의 사용, 편성, 수사학, 극적인 구성, 작품에 대한 이해에서 동시대의 어떤 연주도 능가하는 신기원을 이룩했다. 게다가 요한 수난곡 전후에 연주한 b단조 미사, 마태 수난곡 연주에서도 느낄 수 없는 일관된 음악성과 높은 연주기술을 과시하고 있다. 모든 측면에서 혁신적이며 요즘도 여전히 생동감이 넘치는 연주이다. 빈 소년 합창단이 상성부와 소프라노, 알토 독창을 맡았는데 합창단의 전통에 따라 솔리스트의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다. 빈 소년 합창단의 목소리는 아주 성숙한 음성으로 독일 합창단의 전형적인 소년 소리와 매우 다르다. 복음사가 쿠르트 에크빌루즈와 예수역의 막스 판 에흐몬트는 강건하고 극적인 바흐를 들려주는데 이는 아르농쿠르의 수사학적인 분석에 근거한 것으로 특히 “바라바” 부분을 동시대의 연주와 비교해 보는 것은 아주 흥미롭다.
길레스베르거/아르농쿠르와 그 다음 시대악기 연주인 한스-마르틴 슈나이트(Hanns-Martin Schneidt)의 연주 사이에는 상당한 간극이 존재하는데 기악과 성악의 기술적인 문제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60년대 바흐 거장들의 틈바구니에서 시대악기의 존재감을 알리는데 어려움이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기술적인 측면에서 흥미롭게도 최초의 시대악기 연주들이 모두 소년 합창과 솔리스트를 썼다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시대악기연주 초기 시대에 음악적인 ‘완벽함’(perfection)보다는 역사적인 ‘정당성’(authenticity)을 추구했음을 시사하는 부분이다.
슈나이트는 레겐스부르크 돔슈파첸과 콜레기움 성 에메람을 이끌고 1979년 요한 수난곡을 전곡 연주했다(Archiv). 단지 거기에 그치지 않고 신 바흐 전집에 포함된 1725년 변경된 합창 두 곡과 아리아 세 곡을 모두 수록한 최초의 녹음으로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소년 솔리스트의 역량이 빈 소년 합창단에 비해 뛰어나다고 할 수 없으나 좀 더 소년답고 소박한 음성이 매력적이다. 슈나이트 반의 복음사가와 예수는 길레스베르거/아르농쿠르의 반대편에서 완성도 높은 연주를 들려준다. 슈나이트 반의 복음사가와 예수는 극 속의 인물이라기보다는 텍스트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전달자로서의 역할에 더 충실하다.
뮌헨, 쉬투트가르트, 안스바흐 그리고 라이프치히의 강력한 바흐 전통 때문에 슈나이트 이후 시대악기에 의한 바흐 연주는 당분간 독일이 아닌 다른 나라의 손에 넘겨지게 된다. 존 엘리엇 가디너(John Eliot Gardiner)의 1986년 녹음(Archiv)은 시대악기 연주에서도 기술적인 완벽함에 도달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또한 영국에서 요한 수난곡 연주에서 독창자로 카운터테너를 쓰는 전통을 확립했다. 새로운 세대의 복음사가 앤소니 롤프-존슨이 등장했고 예수 역에는 스티븐 바코, 소프라노 낸시 아젠타, 루쓰 홀튼, 카운터테너 마이클 챈스 등 영국을 대표하는 고음악 가수들이 참여했다. 가디너는 마태 수난곡처럼 요한 수난곡도 하나의 드라마로 바라봤는데 곡의 성격에 따라 온화한 낸시 아젠타와 소년같은 루쓰 홀튼을 구분해 쓰는 등 극의 등장인물처럼 독창자를 다루었다. 전성기의 마이클 챈스는 음악해석에 대한 깊이 있는 감각을 들려준다. 시대악기 앙상블과 완전히 일치된 그의 벨벳 같은 톤은 카운터테너 음성의 표본이다.
네덜란드에서 시대악기 운동은 지기스발트 쿠이켄(Sigiswald Kuijken)과 라 프티 방드가 이끌었다. 쿠이켄의 요한 수난곡 녹음(1987, DHM)에서 오늘날 가장 뛰어난 바흐 복음사가로 손꼽히는 크리스토프 프레가르뎅이 모습을 드러냈고 예수 역의 하리 반 데어 캄프, 소프라노 바바라 슐릭, 알토 르네 야콥스, 테너 니코 판 데르 메일, 베이스 막스 판 에흐몬드 등 하나부터 열까지 옛 성악에 정통한 인물들이 참여했다. 기술적으로는 분명 아르농쿠르, 슈나이트를 뛰어넘었으나 아쉽게도 해석적인 면에서는 신선함이 부족하다.
이미 마태 수난곡(1985, HMF)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둔 필리프 헤레베허(Philippe Herreweghe)는 복음사가 하워드 크룩, 소프라노 바르바라 슐릭 등 마태 수난곡과 거의 같은 멤버를 이끌고 곧바로 요한 수난곡도 녹음했다(1987, HMF). 전통주의자들 그리고 아르농쿠르와 가디너가 채찍으로 내려치거나 땅이 흔들리는 것 같은 극적인 표현을 최대한 청각적으로 구체화 시키려고 애쓸 때 헤레베허는 그것의 상징적인 측면에 집중했다. 쉽게 귀에 들어오는 연주는 아니지만 담담한 표현이 오래 마음에 남는 연주이다.
1990년대 들어 바흐 연주에서 플랑드르 사람들의 기여는 눈부실 정도이다. 프란스 브뤼헨(Frans Brüggen)은 거대한 규모의 18세기 오케스트라와 네덜란드 실내 합창단을 이끌고 우주적인 스케일의 바흐를 들려준다(1992, Philips). 첫 번째 합창에서 피아니시모로 시작하여 점차 보컬 앙상블과 오케스트레이션의 미묘한 긴장관계가 형성되는 것이 마치 잘 짜인 교향곡을 듣는 느낌이다. 부드러운 표현 가운데 거대한 힘이 느껴진다. 극히 미묘한 뉘앙스를 표현해야 하는 리코더 주자부터 고전파 교향곡에 정통한 지휘자까지 두루 경험한 브뤼헨 다운 표현이다. 바소 콘티누오는 아주 간결하고 지진 장면조차도 과장 없이 연주되었다. 마지막 합창과 코랄을 지나치게 빨리 연주한 것이 브뤼헨 연주의 유일한 약점일 것이다. 젊고 신선한 네덜란드 테너 니코 판 데르 메일이 복음사가를 불렀는데 귀족적이고 세련된 발성으로 힘들이지 않고 거침없이 올라가는 그의 목소리는 프레가르디엥, 게르트 튀르크, 앤소니 롤프 존슨 등 쟁쟁한 다른 복음사가들과 구분되는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했다.
오늘날 최소편성 반대론의 선봉에 서 있는 톤 코프만(Ton Koopman) 역시 브뤼헨과 마찬가지로 스케일이 큰 연주를 들려준다(1993, Erato). 요스 판 벨트호펜(Jos van Veldhoven)이 이끄는 네덜란드 바흐 악우협회(Nederlandse Bachvereniging) 합창단과 암스테르담 바흐 오케스트라가 호흡을 맞췄다. 복음사가는 기 드 메이, 예수 역은 페터 코이이며 테너 아리아에 게르트 튀르크, 베이스 아리아에 클라우스 메르텐스 등 반가운 이름이 등장한다. 음향이 크고 육중하지만 아주 균형이 잘 잡혀 있다. 희한한 해석으로 무리한 줄타기를 시도하지 않는 연주로 특히 성악과 기악의 밸런스가 모범적이다.
바로크 오보이스트 파울 돔프레히트(Paul Dombrecht)는 최근 지휘자로도 활약하고 있는데 일 폰다멘토 성악 기악 앙상블을 이끌고 1996년 벨기에에서 요한 수난곡을 연주한 것이 실황녹음으로 발매되어 있다(Vanguard). 복음사가는 이언 허니맨, 예수 역은 베르너 판 메헬렌이다. 바소 콘티누오 측면에서 시사점이 많은데 딱딱 끊어치고 군더더기가 없는 브뤼헨과는 정 반대로 아주 장식적인 오르간 바소 콘티누오 연주를 시도하고 있다. 그리고 류트가 합창과 코랄을 포함해 전곡에 걸쳐 바소 콘티누오 악기로 애용되고 있다.
니코 판 데르 메일이 활약한 또 다른 연주는 디에고 파솔리스(Diego Fasolis)가 스위스 방송 합창단, 앙상블 바니타스를 지휘하여 녹음한 음반이다. 1998년 루가노의 성 로렌쪼 성당 실황연주이다(ARTS). 복음사가 니코 판 데르 메일, 예수 클라우스 메르텐스의 가창은 명불허전이다. 그밖에 소프라노 로베르타 인베르니치가 바흐 음악에 대한 놀랄만한 감각을 과시한다. 그녀의 목청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스타일도 아주 좋다.
베이스 데이비드 반 애쉬(David van Asch)가 이끄는 스콜라스 바로크 앙상블(Scholars Baroque Ensemble)은 수난곡 연주에 새로운 이론을 과감히 도입했다(1993, Naxos). 바로 최소편성에 가까운 콘체르티스트-리피에니스트 해석으로 요한 수난곡을 연주했다. 성악 뿐만 아니라 기악도 극도로 간소하게 구성했다. 코랄조차도 각 성부가 뚜렷한 개성을 지닌 연주가 되기 때문에 이와 같은 편성에서는 성악가의 기량이 매우 중요한데 앙상한 가지를 연상시키는 스콜라스 바로크 앙상블의 연주는 아직 최소 편성의 장점 보다는 단점이 두드러졌다.
텔덱 음반 그리고 유니텔의 영상물에 이은 세 번째 녹음에서 아르농쿠르는 길레스베르거나 슈미트-가덴(Gerhard Schmidt-Gaden)의 그늘에서 벗어난 자신의 순수한 해석을 노골적으로 드러난다(1993, Teldec). 소년을 쓰지 않고 성인 솔리스트와 아르놀트 쇤베르크 합창단을 채용했기 때문에 어떤 종류의 표현도 적극적으로 할 수 있게 되었다. 스포츠카의 액셀레이터를 밟는 것처럼 가속하고 질주하는 군중합창에서 짜릿한 전율을 느낄 수 있다. 복음사가와 아리아에 앤소니 롤프-존슨을 기용하여 극적인 면을 전면에 강조했다. 하프시코드 사용이 점차 유행하는 시점에서 아르농쿠르는 오르간만 사용한다는 원칙을 고집하고 있다. 으르렁거리는 콘트라바순의 소리처럼 세련된 것과 거리가 먼 야성적인 연주지만 그것이 오히려 매력이다.
스티븐 클레오베리(Stephen Cleobury)의 연주는 영상물이 잘 알려져 있는데 1725년 버전으로 연주한 영상물과 달리 음반은 1724년 초판본을 기초로 1725년의 변경된 합창과 아리아를 부록으로 넣었다(1996, Brilliant Classics). 따라서 음반에는 비올라 다모레와 류트가 쓰였으며 영상물에서는 오르간만 사용된 것에 대해 음반에서는 몇몇 아리아에 오르간과 하프시코드가 듀얼 콘티누오를 연주한다. 아주 균형 잡힌 연주인데 이러한 균형에 파문을 일으키는 것은 다름 아닌 복음사가 존 마크 에인슬리로서 바라바를 외치는 군중 합창과 고문 장면에서 극적인 정점을 이룬다.
브릴리언트 레이블에서 획기적인 바흐 칸타타 전집 연주를 선보인 피터 얀 로이싱크(Pieter Jan Leusink)도 요한 수난곡을 지휘했다. 네덜란드 소년 합창단, 네덜란드 바흐 콜레기움이 연주한 요한 수난곡(2001, Brilliant Classics)은 칸타타 시리즈에 비하면 유명한 독창진을 쓰진 않았지만 그럭저럭 좋은 기량인데 비해 유감스럽게도 합창이 재난 수준이다. 말랑말랑한 코랄 연주는 성의가 없다고 느껴질 정도이다. 홀로 분전하는 복음사가만으로는 가라앉는 타이타닉을 막을 길은 없다.
같은 소년 합창이라면 에드워드 히긴보톰(Edward Higginbottom)과 옥스퍼드 뉴 칼리지 합창단이 클레오베리 이후 단연 완성된 기량을 선보인다. 옥스포드 뉴 칼리지 합창단과 콜레기움 노붐이 연주한 요한 수난곡(2001–2년, Naxos)은 2000년대 주요 레퍼토리에서 거둔 낙소스 레이블의 뛰어난 수확물 가운데 하나이다. 소년 합창, 소년 솔리스트이며 복음사가 제임스 길크라이스트를 비롯하여 옥스포드 뉴 칼리지 출신의 주요 가수들이 참여했다. 기본적으로 통상편성이지만 새로운 이론도 도입하여 몇몇 아리아에서 최소편성의 기악반주를 시도했다. 합창의 밸런스는 시시각각 변화하며 신선한 느낌을 주고 코랄은 절도가 있다. 길 크라이스트의 극적인 낭송이 전반적으로 차분한 연주 곳곳에 액센트를 주고 있다. 카운터테너 제임스 바우만의 이름이 반가운데 바우만의 독일어는 결코 좋다고 할 수 없으나 독특한 호소력이 있다. 발매당시 그라모폰으로부터 이달의 음반으로 선정되었는데 그만한 연주라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근래 좋은 바흐 연주가 없었던 섬나라 사람들을 고무시킬 만한 연주인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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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Mannerism versus Evolution
신 바흐 전집 악보와 다양한 연주 관습에 대한 연구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르농쿠르, 레온하르트 같은 선구자의 실증적인 시대악기 연주에 의해 70년대 말부터 약 4반세기 동안 바흐 연주 경향은 엄청나게 바뀌었다. 전통주의자들은 전통을 고수하거나 익숙한 매체를 유지하면서도 역사적인 연주방식을 흡수하는 등 다양한 변화를 모색할 수밖에 없었다.
미셸 코르보(Michel Corboz)는 엄밀한 의미에서 전통주의자는 아니다. 오히려 1960년대부터 시대악기로 몬테베르디 등을 연주해왔다. 다만 최초의 수난곡 연주들은 다소 보수적인 입장에서 접근했다. 쿠르트 에크빌루즈가 복음사가를 부른 1977년의 에라토 녹음은 전통적인 해석을 바탕으로 어느 정도 역사적인 접근방식과 현대악기의 기술적인 성숙함을 조화시켰다. 그리고 코르보의 60세 기념 연주회 실황음반(1994, Cascavelle)은 거의 시대악기 어법에 가까운 본격적인 절충주의 연주이다. 독창진도 복음사가 크리스토프 프레가르디엥, 예수 역에 피터 하비, 카운터테너 안드레아스 숄, 테너 찰스 다니엘스 등 옛 가창법에 정통한 가수로 이루어져 있다. 연주 관습적으로는 류트 바소 콘티누오를 광범위하게 사용한 것에 큰 특징이 있다. 코르보는 비슷한 시기에 녹음한 바흐 모테트에서도 류트를 중요하게 다루어 바흐 연주에서 류트 콘티누오의 가능성을 여러모로 탐구했다.
그러나 거장 코르보 조차도 헬무트 릴링(Helmuth Rilling)의 확신에 찬 연주 앞에 서면 초라해 보일 지경이다. 복음사가 페터 슈라이어를 앞세운 개힝거 칸토라이와 바흐 콜레기움 쉬투트가르트의 첫 번째 녹음(1984, CBS)은 신 바흐 전집 악보를 사용하고 짧은 레치타티보 연주관습을 채용한 연주로 리듬이 분명하고 명쾌한 연주지만 코랄에는 리타르단도도 쓰는 등 낭만적인 요소도 남아있다. 꽤 직설적인 해석으로 바라바 장면에서 복음사가는 거의 까무러치다시피하다. 오르간보다는 하프시코드가 바소 콘티누오의 중심인데 복음사가와 예수를 모두 하프시코드가 반주하고 있다. “Es ist vollbracht”에서 콘라트 융해넬의 류트 콘티누오가 아주 아름답다.
1996년 핸슬러 레이블(Hänssler)의 두 번째 녹음에서는 복음사가 미하엘 샤데, 예수 마티아스 괴르네 같은 젊은 가수들이 전면에 섰다. 구성상 특징은 1725년 판본의 아리아가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해석은 전작의 직설법을 더욱 극단으로 끌고 가서 첫 번째 합창의 “Herr”부터 절규하듯이 밀고 나간다. 바소 콘티누오는 오르간만 사용해서 오히려 후퇴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지만 시대악기 전문가인 미하엘 베링거가 연주하는 오르간 바소콘티누오의 수준은 이전 녹음과는 비교할 수 없다.
복음사가에서 지휘자로 변신한 페터 슈라이어(Peter Schreier)는 그 이름만으로도 독일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라이프치히 방송 합창단과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를 이끌고 요한 수난곡을 녹음했다(1988 Philips). 이 음반에는 1725년 판본의 세 아리아가 포함되어 있다. 복음사가와 아리아는 당연히 페터 슈라이어의 몫인데 아직까지는 전혀 피로한 기색을 엿볼 수 없다. 슈라이어의 지휘 또한 지금까지 그가 복음사가에서 들려준 것과 같이 다소 직접적인 경향이 있다. 첫 합창부터 관악기 앙상블의 특징적인 음향을 잘 살리고 있다. 이탈리아 인들(칼리아리 극장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을 이끌고 연주한 2001년의 새 연주는 독일 전통 위에 세워진 첫 번째 연주와는 완전히 대조적이다. 첫 녹음이 1724년을 중심으로 1725년의 개정 아리아를 포함시켰다면 새 연주는 1739년과 1749년의 개정판 악보에 기초했다. 복음사가는 슈라이어 자신이 불렀고 아리아는 마르쿠스 샤퍼가 불렀다.
최근 20년 사이 현대 악기 연주는 시대악기 연주와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며 일종의 진화를 거듭했다. 그러나 몇몇 연주는 종종 시대착오적이라고 평가되기도 한다. 에노흐 쭈 구텐베르크(Enoch zu Guttenberg)와 노이보이에른 합창단, 뮌헨 바흐 콜레기움의 요한 수난곡 연주(1991, RCA)는 복음사가에 클라에스-호칸 안스외, 예수 역에 안톤 샤링거, 알토에 나탈리 스튀츠망, 빌라도 역에 토마스 크바스토프 같은 좋은 가수들이 참여했지만 유감스럽게도 별 흥미를 끌지 못한다. 추억에 적당히 양념을 쳐서 다시 끓여냈지만 1990년 이후 수 없이 많은 좋은 연주 사이에서 돋보이기 위한 설득력이 부족하다.
현대 악기 연주에서 마지막으로 언급할 만한 연주는 뛰어난 루트비히 귀틀러(Ludwig Güttler)와 비르투오지 작소니에의 연주이다. 귀틀러는 구 동독 최고의 트럼피터로 라이프치히 바흐 시리즈에서 트럼펫과 호른을 도맡아 분 인물이다. 그가 드레스덴의 18세기 작품을 연주하기 위해 창단한 비르투오지 작소니에는 시대악기를 사용하진 않았지만 수준 높은 절충주의 연주를 들려준다. 기악 연주 말고 바흐 칸타타와 성악곡 녹음이 아주 약간 있는데 그 중에서 요한 수난곡의 녹음이 가장 중요하다. 1998년 드레스텐의 유서 깊은 루카스 교회에서 연주했다. 합창은 알렉산더 고쉬가 이끄는 할렌저 마드리갈리스텐이다. 복음사가와 테너 아리아를 신성 크리스토프 겐츠가 불렀다. 적당한 무게감과 단호함이 있는 연주로 귀틀러는 지나친 과장도 소극적 표현도 없는 뛰어난 균형감각을 보여준다. 이 연주는 건강할 뿐만 아니라 아름답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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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From First to Last
앞서 설명한 대부분의 연주에 사용된 악보는 현대 악기와 시대 악기를 막론하고 1724년부터 1749년까지의 여러 악보에 기초한 혼합 판본이다. 사실 구 바흐 전집, 신 바흐 전집 악보 자체가 그렇게 되어있다. 가끔 1724년 초연판이라는 연주도 볼 수 있는데 대부분 예수의 죽음과 지진 장면을 마태 수난곡으로부터 영향 받은 나중 판본에서 가져온 잡탕일 뿐이다. 각 연주 판본에서 가장 좋은 것을 골라 조합하면 이상적인 악보가 되지 않겠냐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현대의 개념일 뿐이다.
혼합 버전으로 연주하는 것은 특정한 판본에서 작곡가의 특별한 아이디어를 희석시켜버릴 위험이 있다. 악보를 개정하는 것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며 그와 같은 아이디어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도 오늘날 지휘자들에게 부여된 임무이다. 따라서 요즘 핸델 메시아가 특정한 판본별로 연주되는 것처럼 바흐의 요한 수난곡도 각각의 개정판에 따라 연주가 시도되고 있다. 크리스토프 볼프(Christoph Wolff)에 따르면 요한 수난곡은 1724년, 1725년, 1728년, 1749년 등 최소한 네 번 연주되었다. 따라서 네 가지 연주 악보가 있는데 이것 말고도 1739년경 한 번 더 개정을 시도한 것이 미완성으로 남아있다.
1723년 쿠나우의 뒤를 이어 라이프치히 칸토르로 취임한 바흐는 이듬해 성 금요일인 1724년 4월 7일 성 니콜라스 교회에서 요한 수난곡을 연주한다. 오늘날 초고의 자필악보는 남아있지 않지만 초기 악보로부터 필사한 듯한 다른 악보들을 통해 1724년 버전을 재구성할 수 있다.
요스 판 벨트호펜(Jos van Veldhoven)의 연주는 1724년 초연을 재구성한 것이다(2004, Channel Classics). 음악학자 피터 디르크선이 다른 사본으로부터 초기 버전을 재구성했다. 예수의 죽음과 지진 장면이 짧기 때문에 다른 판본과 쉽게 구분할 수 있다. 네덜란드 바흐 악우협회 합창단과 바로크 오케스트라는 완벽한 콘체르티스트-리피에니스트 스타일로 연주했다. 오늘날 몇몇 연구에 따르면 초연에서는 관악기 없이 연주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를 바탕으로 디르크선과 판 벨트호펜은 오케스트레이션에서 플루트를 제외했다. 대신 전곡에 걸쳐 류트 바소 콘티누오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기악에서 더 풍부한 표현을 끌어내는데 성공했다. 코랄과 합창은 선명하며 풍부한 감정으로 넘실댄다. 복음사가에 게르트 튀르크, 예수에 스테판 맥클로드라는 현대 바흐 수난곡 연주의 대표적인 인물이 참여했다. 최신의 해석이 완벽한 기술로 연주되었을 뿐만 아니라 음반 패키지도 예술적으로 구성된 한마디로 돈과 시간이 아깝지 않은 연주이다.
1725년 성 금요일(3월 30일)에 바흐는 성 토마스 교회에서 좀 더 온화한 시작 합창이 있는 개정판 요한 수난곡을 선보였다. 이와 같은 개정은 연극적인 요소가 너무 많은 다시 말해 음악적인 정열이 넘치는 극적인 작품에 대해 검열 당국이 지적했기 때문일 수 있다. 바흐는 이미 “교회는 좋은 질서를 지키는 가운데 음악이 너무 길지 않도록, 또한 음악을 극적으로 만들지 않고 청중에게 경건한 신앙심을 일깨우도록 만들 것”이라고 쓴 규정집에 서명한 상태였다. 그러나 바흐는 형식상 타협했을지언정 음악적으로는 타협하지 않았다. 첫 번째 합창을 나중에 마태 수난곡에 포함되는 “O Mensch, bewein’ dein Sünde groß”로, 마지막 곡을 초고의 간결한 코랄에서 심오한 아름다움을 지닌 긴 코랄 “Christe, du Lamm Gottes”로 변경했고 제 1부의 격렬한 테너 아리아들 대신에 베이스와 소프라노 칸투스 피르무스를 위한 힘찬 아리아 “Himmel, reiße” 등 새로운 아리아 세 곡을 추가시켰다.
이와 같은 개정 작업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점이 많다. 그때그때 연주 여건이나 가수 상황에 따라 개별 악장을 고쳐 쓴 핸델과 달리 바흐는 개정판을 만들면서 전체적인 균형을 항상 고려했다. 비록 여기저기서 가사를 가져오고 여러 가지 이유로 악보를 고쳐 쓰더라도 음악에 의한 통일성과 완결성은 결코 양보하지 않았다. 바로 이점이 바흐를 다른 바로크 작곡가들과 구분하는 가장 큰 특징일 것이다.
전곡의 인상을 결정하는 첫 번째 합창이 바뀌었기 때문인지 두번째 개정판은 연주가 드문 편이다. 필립 헤레베허와 페터 노이만(Peter Neumann)은 두 번째 요한 수난곡 녹음에서 1725년 판본을 시도했다. 헤레베허의 연주(2001, HMF)에서 복음사가는 가장 뛰어난 바로크 테너이자 오뜨꽁뜨르이지만 복음사가와는 별 인연이 없었던 마크 패드모어가 불렀다. 안드레아스 숄이 알토 아리아를 불렀는데 코르보 반을 능가하는 안정된 발성을 들려주긴 하지만 “Es ist vollbracht” 같은 아리아에서 텍스트를 겉돌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1749년 판본은 바흐가 죽기 직전에 다시금 최초의 아이디어로 되돌아갔다는 점에서 최근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다. 다만 시대가 바뀌었기 때문에 비올라 다모레 대신 약음기 낀 바이올린을 사용했고 류트 오블리가토 대신 오르간(혹은 하프시코드)가 지시되어 있고 일부 악장의 가사가 바뀌었다.
비슷한 시기에 1749년 판본 연주가 등장했는데 겨우 한 달 차이로 헤르만 막스(Hermann Max)가 앤드류 패롯(Andrew Parrott)을 앞섰다. 그러나 그 차이 이상으로 두 지휘자의 스타일은 완전히 다르다. 헤르만 막스와 라이니셰 칸토라이, 다스 클라이네 콘체르테의 요한 수난곡(1990, Capriccio)에서 복음사가는 크리스토프 프레가르디엥이 불렀으며 소프라노 마르티나 린스와 도로테아 뢰쉬만 같은 일급 바로크 가수들이 참여했다. 솔리스트가 합창에 포함되어 있지만 콘체르티스트-리피에니스트 해석은 아니다. 연주는 전반적으로 빠르고 표현적인데 알토 아리아 “Von den Stricken”처럼 몇몇 아리아에서는 지나치게 빠르다는 느낌도 들지만 해석의 방향과 템포, 다이나믹의 선택은 훌륭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한편 패롯과 태버너 콘소트와 태버너 플레이어즈의 연주(1990, EMI)는 아주 작은 편성이며 소프라노와 알토 파트에 여성과 소년을 함께 사용했다. 복음사가는 로저스 코비-크럼프, 예수는 데이비드 토마스가 불렀는데 약간 가볍고 비브라토가 있는 두 가수의 음성은 바흐보다는 핸델을 불렀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로렌스 드레이퍼스는 후기 라이프치히 시대에 더블 바소 콘티누오 연주관습을 증명함으로서 바흐 연주에서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했다. 비슷한 시기에 동일한 악보를 사용한 헤르만 막스와 앤드류 패롯이 모두 드레이퍼스를 인용하고 있음은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패롯의 연주에서 하프시코드가 다소 보조적인 위치에 머물러 있는 것에 반해 헤르만 막스 그리고 역시 1749년 판본으로 연주한 스즈키 마사아키는 하프시코드를 중요한 요소로 격상시켰는데 군중 합창에서 그 과감한 효과는 무시무시할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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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Evangelists from The New World
미국은 바흐 음악과 역사적 연주방식으로부터 동떨어진 무인도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19세기 미국 오르가니스트이자 합창지휘자였던 프레드 월(John Frederick Wolle)은 펜실바니아의 공업도시 베들레헴에서 바흐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오늘날까지 유명한 베들레헴 바흐 축제의 시작이다. 월은 1888년 베들레헴 바흐 축제에서 요한 수난곡을 처음 연주했다. 이처럼 미국은 바흐와 요한 수난곡과 오랜 인연이 있다. 또한 올드리치의 회고에 따르면 1935년 쿠세비츠키의 지휘로 보스턴 심포니가 요한 수난곡을 연주했다고 한다. 레코딩 역사도 꽤 오래되어서 벌써 1950년에 로버트 쇼(Robert Shaw)는 미국 최초의 요한 수난곡 음반을 녹음했다(RCA). 비록 영어 공연이지만 같은 해 그로스만의 녹음과 달리 생략 없이 연주했다.
신대륙의 바흐 연주를 유럽과 비교하면 흥미로운 점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평균적인 수준은 유럽에 미치지 못하지만 소위 전통의 영향을 받지 않은 개성 만점의 연주들을 발견할 수 있다. 나치 독일을 피해 독일이나 네덜란드에서 많은 음악가들이 망명했기 때문에 생각보다 옛 음악 연구 역사도 유럽보다 짧지 않다. 오히려 2차 대전 동안 유럽은 정체된데 반해 미국에서는 파울 힌데미트 등이 중심이 되어 옛 음악 연구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되었다.
앤소니 뉴먼(Anthony Newman)의 녹음(1986, Newport Classic)은 미국뿐만 아니라 요한 수난곡 연주사를 통틀어서도 앞선 시대악기 연주이다. 뉴먼은 하프시코드 연주와 지휘를 겸하며 브란덴부르크 콜레기움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을 이끌었다. 그는 바흐 수난곡과 바로크 오페라 사이의 연결고리를 요한 수난곡에서 찾고자 했다. 따라서 아리아는 장식되고 심지어 짧은 카덴짜가 붙기도 한다. 가사는 초고를 기준으로 했지만 오케스트레이션은 1749년을 따라 약음기 낀 바이올린과 하프시코드 오블리가토를 사용했다. 오랫동안 신대륙 최고의 복음사가로 군림한 제프리 토마스가 참여했는데 그는 어떤 음이라도 정확한 발성을 들려준다.
케네스 슬로윅(Kenneth Slowik)과 스미소니언 체임버 플레이어즈의 연주(1989, Smithsonian)는 음악 해석과 실제 구현 측면에서 유럽의 어느 연주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최고 수준의 요한 수난곡이다. 슬로윅은 첼리스트-지휘자라는 특이한 위치에서 아주 꼼꼼하게 그리고 어떤 과장도 없이 바흐가 말하고 들려주고자 한 바를 정확히 짚어냈다. 앤소니 뉴먼의 음반과 마찬가지로 제프리 토마스가 복음사가를 맡았다. 성악은 성부 당 세 명으로 구성된 완벽한 콘체르티스트-리피에니스트 해석이다. 바소 콘티누오는 오르간만으로 간소하다. 1724년 판본을 중심으로 1725년의 개정된 합창과 아리아를 모두 수록했다. 요한 수난곡에 관련된 풍부한 정보를 담고 있는 내지에는 심지어 더 읽어볼 도서 안내까지 있어서 과연 스미소니언 음반답다 라는 생각이 든다.
현재 ATMA 레이블에서 바흐 칸타타 시리즈를 진행 중인 에릭 밀른스(Eric J. Milnes)는 트리니티 성당 합창단,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요한 수난곡을 연주했다(Pro Gloria Musicae). 밀른스의 연주는 미국에서 바흐 해석의 넓이를 느끼게 해준다. 1996년 성금요일 포틀랜드 트리니티 성당에서의 실황녹음으로 1724년 판본을 기본으로 1749년의 악기 편성을 적용했다. 시대악기를 사용했지만 슬로윅과는 대조적으로 합창만 58명에 이를 정도로 엄청난 규모의 연주이다. 그러나 거기에 그치지 않고 콘체르티스트-리피에니스트 해석을 도입하여 독창그룹에 의한 개별적인 감정의 표현과 대규모 합창에 의한 군중 합창과 코랄의 객관적인 힘을 모두 현실로 만들었다. 단 하루 동안의 실황녹음이기 때문에 기술과 녹음이 완벽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들을 때마다 감탄하게 되는 진정 압도적인 실황연주이다.
보스턴의 크레이그 스미스(Craig Smith)는 1725년 판본을 시도했다(Koch International, 1998년). 보스턴의 에마누엘 교회에 소속된 에마누엘 뮤직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의 연주로 아직까지 현대 악기로 연주한 유일한 1725년 판본 음반이기도 하다. 독창을 합창단의 일원이 돌아가며 부르긴 했지만 콘체르티스트-리피에니스트 구성은 아니다. 특별히 모난 연주는 아니지만 독창을 전부 다른 가수들이 부르기 때문에 연주 수준에 일관성이 없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지네트 소렐(Jeannette Sorrell)이 이끄는 아폴로스 파이어의 연주(1999, ECLECTRA)는 현대 시대악기 연주 중에서도 아주 유니크 한 것이다. 왜냐하면 시대악기를 쓰면서 영어로 불렀기 때문이다. 청중이 복음사가를 알아들을 수 없다면 무슨 소용이냐는 게 그녀의 이유인데 그런 그녀조차도 바흐를 노래하기에 독일어가 더 아름답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최대한 독일어의 느낌이 나도록 영어 번역문을 구성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리아는 아무래도 어색하다. 그 점은 다니엘 테일러 같은 뛰어난 가수가 부르더라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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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Bach Made in Japan
바흐 연주에서 일본을 별도로 다루는 것이 이상해 보일지도 모른다. 서구인들은 바흐를 오랜 기독교 전통 없이 부를 수 있는가에 의문을 갖고 있다. 게다가 기독교도도 아니라면 바흐의 수난곡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잘 알려진 것처럼 일본에서 기독교는 소수 종교이다. 하지만 바흐 콜레기움 저팬의 정기 연주회는 거의 매번 매진될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다. 일본에는 수백에 이르는 아마추어 합창단이 바흐의 칸타타, 미사, 수난곡을 연주하고 있을 정도로 바흐 음악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이다.
스즈키 마사아키(Suzuki Masaaki)는 바흐를 통해 성서의 말씀을 전한다고 말한다. 모든 청중이 기독교도는 아니지만 바흐의 음악을 통해 언제나 감동받고 그 복음에 감화된다. 신성모독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현상이 오히려 경계를 넘어서는 바흐 음악의 위대함을 증명한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바흐 연주는 당연한 이야기지만 처음에는 유럽을 본받고 있다. 유럽 지휘자와 일본 합창단의 조합이 바로 그런 경우이다. 오보이스트이자 독일 바흐 졸리스텐의 지휘자로 명망 높은 헬무트 빈셔만(Helmut Winschermann)은 여러 차례 일본 공연을 했는데 1995년 동경 산토리 홀에서 요한 수난곡을 지휘한 것이 음반으로 발매되어 있다(Live Notes). 오카야마 바흐 칸타타 악우회, 독일 바흐 졸리스텐의 연주이다. 복음사가 닐스 기제케, 소프라노 바르바라 슐릭을 제외하곤 모두 일본인 가수인데 노 지휘자의 헌신에 호응하듯 온 힘을 다하여 바흐 음악에 집중하고 있다. 비교적 편성이 큰 오케스트라와 합창이지만 잘 조절되고 균형 잡힌 바흐를 들려준다.
노년의 한스-마르틴 슈나이트는 현재 일본에 정착, 슈나이트 바흐 합창단을 조직하여 바흐 작품을 연주하고 있다. 2001년 동경 오페라시티 콘서트홀에서 공연한 요한 수난곡이 음반으로 발매되어 있다(Live Notes). 한때 역사적 연주방식의 전위에 섰던 인물답지 않게 거대주의에 집착하고 있는데 하프시코드 연주와 지휘를 겸하며 부산하게 움직이지만 결과는 신통찮다. 다만 독창자는 모두 일본인인데 그 가운데 복음사가 하타 요시푸미가 깜짝 놀랄만한 정확한 발음과 인토네이션을 들려준다.
일본의 한쪽에서는 유럽에서 출발하여 본고장과 동등하거나 혹은 그것을 능가한 앙상블이 있다. 스즈키 마사아키(Masaaki Suzuki)와 바흐 콜레기움 저팬은 요한 수난곡을 세번이나 녹음했는데 첫 번째 녹음은 동경 카잘스 홀에서 열린 정기 연주회 실황(1995, King Records)으로 게르트 튀르크가 복음사가를 미치오 타타라가 예수를 불렀다. 비올라 다모레와 류트가 있는 1724년 판본으로 하프시코드 없이 오르간만으로 반주했는데 “Es ist vollbracht”에서 류트 콘티누오도 사용했다. 스즈키와 바흐 콜레기움 저팬의 기술적인 성취는 놀라운 것으로 첫 번째 합창에서 마지막 코랄까지 일관된 기술과 음악성을 유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마지막 코랄에선 확신에 찬 신앙이 느껴진다.
BIS 정규 녹음은 1998년 쇼인 여자 대학 예배당에서 녹음된 것으로 복음사가가 게르트 튀르크라는 점을 제외하면 첫 번째 녹음과 여러 모로 다르다. 1749년 판본을 기본으로 1725년 판본의 아리아 세곡이 부록으로 포함되어있다. 판본의 차이점 이외에도 BIS녹음은 하프시코드 콘티누오가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전반적으로 훨씬 열띤 인상을 준다. 1725년 아리아는 부록 수준이지만 “Himmel reiße”는 최상급의 하프시코드 연주 덕분에 어떤 1725년 판본 연주보다도 강력하다. 카운터테너 메라 요시카즈는 두 곡의 알토 아리아에서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을 절창을 들려준다. 아티큘레이션, 비브라토, 발음 모두 기묘한데도 거부할 수 없는 마력이 있다. 약간 과장을 섞자면 “Es ist vollbracht”는 이 세상 것이 아닌 것처럼 들린다.
마지막으로 완전히 개성적인 연주가 있다. 겐조 타케히사(Genzo Takehisa)는 즉흥연주의 달인이자 기발한 아이디어로 충만한 인물로서 그가 하프시코드를 연주하며 콘베르숨 무지쿰을 지휘한 음반(2001, ALM)은 예수 역의 베이스 줄리언 리폰을 제외하면 성악과 기악 모두 순수한 일본인의 연주이다. 2001년 성주간에 동경 토판 홀에서 실황 연주한 것을 나중에 일부 보완한 것으로 반 실황녹음이라고 할 수 있다. 시종일관 듀얼 콘티누오로 연주하는데 겐조의 개성이라고 할 수 있는 바소 콘티누오의 풍부한 창의가 전곡에 걸쳐 돋보인다. 복음사가는 하프시코드, 첼로, 비올로네가 반주하며 예수는 오르간이 더해진다. 첼로뿐만 아니라 비올로네도 독자적인 표현으로 곡의 표정을 풍부하게 하고 있다. 거의 최소편성인 콘체르티스트-리피에니스트 해석으로 전 앙상블이 마치 겐조의 독주처럼 참신한 효과와 신축성 있는 템포를 구사한다. “Ach mein Sinn”의 바이올린 오블리가토는 독주 수준의 감각으로 연주된다. 각각의 장면은 마치 눈에 그려지는 것처럼 표현되었는데 고문 장면에서 채찍질의 동기는 거의 죽일 듯이 두들겨댄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코랄은 차분하면서 신실한 감정을 담고 있다. 기능적인 측면에서 겐조의 연주를 스즈키와 비교할 순 없지만 스즈키와 겐조 모두 신앙인으로서 마지막 코랄까지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성실한 자세로 연주했다. 제대로 된 수난곡 음반 하나 없는 우리로서는 그저 부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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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영상물
비록 극의 형태로 연주되지 않더라도 바흐의 수난곡 연주를 실제로 보거나 혹은 영상물을 통해 가상의 연주회 기분을 내보는 것은 특히 입문자들의 감상에 큰 도움이 된다. 귀로만 듣고 있으면 가사를 봐도 곡이 도대체 어떻게 흘러가는지 파악하기 어려울 때가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다행히 현재 입수할 수 있는 요한 수난곡의 영상물은 영상은 물론 연주 자체도 수준 높기 때문에 기꺼이 추천하고 싶다.
뮌헨 헤르쿨레스잘에서 정규녹음 이후 1970년 칼 리히터는 암머제의 디젠에 있는 클로스터 교회에서 다시 한번 요한 수난곡을 연주한다(Unitel / Deutsche Grammophon). 리히터는 하프시코드 앞에서 지휘와 레치타티보의 반주를 겸했다. 절도있는 지휘 동작과 정력적인 하프시코드 연주는 저절로 감탄이 나온다. 고문과 채찍 장면에서 리히터의 예리한 터치는 피부를 쑤시는 것 같다. 복음사가는 페터 슈라이어, 예수 역은 에른스트 게롤트 슈람이 불렀고 율리아 하마리가 기대에 부응하는 가창을 들려준다. 하지만 소프라노 헬렌 도나트의 알아듣기 힘든 노래는 음반의 이블린 리어와 마찬가지로 유일하게 흠잡힐 만한 부분이다. 화질이 약간 낡았지만 연주의 적재적소를 잡아내는 연출은 나쁘지 않다. 바로크 활로 비올라 다모레를 연주하는 등의 진귀한 연주 장면을 포함하고 있다.
오랫동안 전설로만 전해지던 아르농쿠르의 두 번째 녹음, 1985년 그라츠 성당의 실황연주가 드디어 DVD로 발매되었다(Unitel / Deutsche Grammophon). 퇼처 소년 합창단이 합창을, 퇼처 소년 합창단의 솔리스트들이 소프라노와 알토 아리아를 불렀고 복음사가는 쿠르트 에크빌루즈, 예수는 로버트 홀이 맡았다. 세월의 흐름 앞에서도 당당한 복음사가 그리고 모든 곡에서 혼신의 힘을 다하는 소년들의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감동이다. 퇼처 소년 합창단 전성기의 솔리스트 파니토 이코노무, 크리스티안 이믈러가 그 완벽한 음색과 인토네이션으로 알토 아리아를 부르고 있는데 어떤 소년 솔리스트의 연주도 비교가 불가능하다. 게다가 “Es ist vollbracht”는 성인도 아닌 소년이 텍스트에 완전히 몰입한 심오한 감정으로 부르는 것을 앞에서 보면서도 믿을 수가 없다. 젊은 크리스토프 쿠왕이 바소 콘티누오 첼로와 비올라 다 감바를 연주했다. 아르농쿠르 연주 중에서 비교적 온화한 해석이지만 그래도 굉장히 다이나믹하고 액센트가 풍부한 연주이다.
킹스 칼리지 채플에서 연주된 클레오베리와 킹스 칼리지 합창단의 연주(1996, Brilliant Classics)는 1725년 판본을 사용한 유일한 영상물로 의의가 있다. 음반과 달리 1725년 판본만 수록되어 있다. 흰색과 붉은색이 배색된 유니폼을 입은 합창단, 어둡고 깊이 있는 공간, 촛불로 조명한 채플 실내의 영상이 아름답다. 복음사가 존 마크 에인슬리의 레치타티보는 유창하며 아리아를 부르는 폴 애뉴는 열정이 넘치는 테너이다. 개정된 아리아를 부르는 베이스 스티븐 바코가 좀 불만족스럽긴 하지만 전반적으로 잘 연출되고, 잘 연주되고, 잘 녹음된 세트이다.
마지막으로 스즈키 마사아키와 바흐 콜레기움 저팬의 실황연주가 있다. 2000년 바흐 250주년 기념으로 동경 산토리 홀에서 연주한 것이다(TDK). 복음사가와 테너 아리아는 게르트 튀르크, 예수 역은 스테판 맥클로드가 불렀고 로빈 블래이즈가 알토 아리아를 불렀다. 복음사가와 아리아를 모두 부르며 처음부터 끝까지 한치의 흔들림도 없는 튀르크의 역량에 놀라게 된다. BIS음반과 마찬가지로 1749년 판본을 사용했다. 바소 콘티누오로 오르간과 두 대의 하프시코드를 사용했는데 스즈키가 직접 하프시코드를 연주하며 앙상블을 리드한다. 스즈키는 전형적인 하프시코드 주자이자 지휘자로서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코프만의 제자다운 일급 바소 콘티누오 연주를 들려준다. 연주는 음반의 무결성에 실황의 생기가 더해진 것으로 완벽하다라는 말 이외에 적절한 단어를 찾기 힘들 것 같다. 1749년 판본이 바흐가 끊임없이 요한 수난곡의 완결성을 고민한 결과라면 스즈키는 그것을 실제로 눈앞에 펼쳐보인 인물이 아닐까? 아마 바흐라도 그 자리에 있었다면 분명 미소를 지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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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영, antiquevangelis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