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타 안티콰 서울 — 비발디와 이범석
조화로움 속에서 창의와 대조를 추구하는 것
돌이켜 보면 불과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고음악과 원전악기 연주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무지에 가까운 것이었다. 원전악기 오케스트라는커녕 바로크 바이올린이나 첼로 같은 오케스트라를 구성하기 위해 필수적인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은 한 줌도 안 되었고 그나마도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었다.
어렵게 옛 악기 연주법을 배워온 사람들도 원전악기는 현대악기로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이 연주하는 것이라는 편견과 끊임없이 싸워야 했다. 그러나 퇴적물이 쌓여 강의 흐름이 바뀌는 것처럼 과거에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들이 우리 눈앞에 현실로 다가왔다.
2005년 창단한 카메라타 안티콰 서울은 바로크 실내악에서부터 오페라와 대규모 종교 성악곡 같은 어느 정도 규모 있는 작품을 연주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국내 연주단체이다. 옛 악기 혹은 그 복제품을 당시 방식으로 연주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편성과 상황에 따라 현대악기와 함께 연주하거나 현대악기로 연주하기도 하는데 이는 바로크 악기 특히 관악기 주자가 충분치 않은 국내 현실상 납득할 만한 일이다. 또한 연주자들이 모두 현대악기로도 충분한 경력을 쌓았기 때문에 원전악기로도 현대악기로도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는 점은 오히려 장점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 연주회에서 전반부의 조화의 영감은 원전악기로, 후반부의 바순 협주곡 e단조와 협주곡 사계 중 여름, 그리고 이범석의 여름 — 한국 여름 비는 현대악기로 연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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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원전악기를 쓴다는 이유만으로 관심을 받는 시대는 이미 지나버렸다. 세계적인 고음악 전문가들이 심심찮게 내한 연주를 하고 있으며 또 그들이 연주한 뛰어난 음반들이 활발하게 수입되고 있기 때문에 음악 애호가들의 귀는 이미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졌다. 악기와 현이 연주하기 까다롭고 온도와 습기에 민감하다는 점을 청중들이 이해해 주리라고 기대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는 원전악기 연주자들에게 엄청난 부담이다.
거의 100년 가까이 갖은 노력을 기울인 유럽에서조차 원전악기 연주가 일반적으로 인정된 것이 한 세대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는 점을 상기해 본다면 카메라타 안티콰 서울의 비발디 연주는 놀라운 성과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최소한 기술적으로 들을 만한 연주를 이끌어내는 것조차도 상당한 노력이 필요한데 거기에 음악적인 매끄러움을 갖췄다. 의심할 여지없이 이전에 국내 단체가 연주한 어떤 비발디보다도 스타일리시한 연주였다.
전체적인 색깔을 좌우한 바이올린 리더와 첼리스트의 활 솜씨는 유럽의 일류 연주자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고 하프시코드와 바로크 기타 같은 바소 콘티누오 주자들은 탁월한 리듬감으로 활약했다. 다만 리더를 제외한 독주자들의 연주가 조금 소극적으로 느껴졌는데 조화의 영감처럼 간결한 구조 속에서 풍부한 표정을 이끌어내야 하는 작품은 연주자들의 적극성과 자발성이 매우 중요하다.
이를테면 협주곡 10번의 라르게토-아다지오 악장에서 네 명의 독주 바이올린 주자가 서로 다른 활 쓰기로 연주하는 것은 악보 상으로는 간단해 보이지만 그 속에 무한한 표현의 경우의 수가 존재하는 것이다. 미묘한 차이가 즉각적인 감정의 기복을 이끌어낸다. 바로 그 점이 바흐를 비롯한 동시대 음악가들을 매료시킨 비발디의 힘일 것이다. 그리고 그 힘을 바로 지금, 바로 여기에 되살리는 것은 오늘날 연주자들의 의무이다.
또한 즉흥 연주라든가 극적인 다이나믹은 공연장에서 시도해 볼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조화로움 속에서 창의와 대조를 추구하는 것은 비발디 더 나아가 바로크 음악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오늘 연주회에서 특별한 점은 한국의 사계를 표현한 이범석의 여름을 연주한 것이다. 이는 고음악 연주단체가 단순히 박제된 음악을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새로운 음악을 추구한다는 점을 웅변하는 중요한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유럽에서도 고음악 연주자들이 그들을 위해 작곡된 새로운 음악을 초연하는 일이 드물지 않다. 또한 연주력 측면에서 기성 오케스트라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음을 증명하는 의미 있는 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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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영, antiquevangelist.com